2006년 11월 27일
궤변
계간 '풋,'을 읽으면서, 박형준, 박정대, 이성복, 함성호, 김소연 시인의 시집이 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돈이 없어서 ……. 라고 말하다가 그런 스스로에게 구역질이 났다. 이어폰에 투자할 5만원은 있으면서 시집을 살 5천원이 없다는 건 궤변이다. 시는 좋아하지만 시집은 어쩐지 아까워서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했던건가. 어째서 히라노 게이치로의 산문집은 망설임 없이 집어들면서 박정대 시인의 시집은 그렇게 오랜 시간 망설이다가 결국 내려놓는가. '가격 대비 성능'을 시집과 소설책에 적용할 수 있는가. 글자수가 적다고 가격 대비 성능이 적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헛소리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시는 좋아하지만 어쩐지 시집 사는 건 돈이 아까워서, 라고 말하면서 웃을 수 있는 스스로의 정신상태를 의심했다. 올해 한 말들 중 궤변 베스트 순위를 매긴다면 베스트 5 안에 들어갈 수준의 것이었다.
단순히 활자를 읽어내리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시가 주는 쿵쿵대는 정신의 울림을 나는 이미 잊었다. 끊임없이 늘어진 텍스트의 행렬을 보고서야 '책을 읽은 듯한 만족감'을 받을 때부터. 정말이지 가끔 혹은 자주 스스로에게 구역질이 난다.
나는 타인에게 엄격하다. 그 엄격함의 잣대를 제발 내 자신에게도 공정하게 들이댈 수 있었으면 한다. 그 순간 나는 또 '어른'에 한 단계 가까워질테니.
# by | 2006/11/27 00:54 | 일상다반사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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